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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망이와 함께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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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ELLO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4-1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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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첫 골든리트리버분양 강아지와 두 번째 강아지에 대한 기억들은 아래 포스팅에서 ▼




첫번째와 두번째 강아지에 대해
본 포스팅은 과거 2000년대 초반 강아지들을 막 키우던 시절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해당 내용이 불편하신 분은 뒤로가기 부탁드립니다.꼬망이는 내 3번째 강아지이다.첫번째 강아지는 미니
yk-diary.tistory.com




나는 별이를 잃고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부모님에게 강아지를 '사'달라고 시위를 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적으면 강아지 로봇 인형을 받았었는데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그렇게 부모님과 전 과목 만점 받기로 매번 내기를 했는데 내가 수학에 너무 약해 전 과목 90점 이상!으로 해도
나는 늘 수학때문에 강아지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못 가진 채 6학년을 맞이하였고 그 해 가을, 나는 오빠의 이슈로 인하여 분당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떻게든 엄마 차로 분당&gt수지 통학을 했지만 졸업 전에는 전학을 가야
그 지역 중학교를 갈 수 있다고 하여 6년내내 친하던 친구들과 졸업식 전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게 내 딴에는 너무 억울하고 슬퍼서 약간 그걸 이용해서 시위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꼬망이 전에 토끼도 키웠었는데 강아지에 대한 상식이 없던 시대인데 토끼는 오죽했으랴..
내가 잘 못키우자 아빠가 토끼를 뒷산에 풀어주라고 혼을 냈고 항의했지만 너무 가부장적이고 엄격하며 화나면 집안을 다 부수는 아버지였기에 나는 울면서 토토를 뒷산에 풀어주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오히려 토끼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대였다.

나는 별이와 토토에 대한 상실감, 친구들과 떨어진 것에 대한 슬픔 등으로 차 안에서 거의 울다시피 엄마한테
제발 강아지 사줘...라고 말했고 엄마는 무슨 골든리트리버분양 바람이 들으셨는지? 바로 차를 돌려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그간 줄곧 '요크셔테리어'를 너무 키우고 싶어서 고민도 없이 요크셔테리어를 보고 싶다고 병원장에게 말했고
원장님은 암컷과 수컷이 있는데 어느 쪽이 좋냐는 말에 별이가 수컷이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암컷 강아지는 뭔가 낯설어
수컷이 좋다고 했다.

그 병원은 강아지 주인으로부터 중간에 인계받아 강아지를 분양판매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도 그럴게 그 당시에 원래 동물병원 유리 전시장에 강아지들이 있었는데 그곳엔 없었다.
강아지도 안쪽에서 데려왔었던지라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
어린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고 수컷 요크셔테리어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새로 산 강아지 집에 넣어주니 왜인지 모르게
집에 얼굴을 박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나와 엄마는 병원에 다시 데려갔다.
그때 내 마음은 얘가 아픈 것 같으니 치료해 주세요였지.. 교환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수컷 새끼 요크셔테리어의 모친 주인이 상태를 듣고 걱정하여 그 애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였고
병원 원장은 원래 암컷이 더 비싼데 차액은 저희가 감당할 테니 암컷을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 하였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눈에 띄게 표정을 구기자 병원 원장은 서둘러 지금의 '꼬망이'를 데리고 나왔고
내게 보여주며 얘가 엄마를 닮아서 눈도 엄청 크고 예뻐요라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에 꼬질꼬질하고 눈물도 묻은 꼬망이가 너무 못생겨 보여서 못생겼어요..라고 육성으로 말했다.

원장님이 당황하며 눈곱을 떼어내 주면서 이렇게 하면 귀여울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말이었다. 골든리트리버분양 엄마는 지치셨는지 그냥 얘로 데려가자고 하였고 나는 맘에 안 들어
심술 난 얼굴로 꼬망이를 품에 안고 그 해 너무나도 추웠던 11월, 꼬망이를 집에 데려왔다.

새끼 꼬망이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있지만 당시 사진들이 현재 내게 없어서 너무 아쉽다.



출처: 더 펫

정말로 이렇게 생겼었다.
(저는 강아지 공장, 애견 분양샵을 절대로 옹호하지 않으며
강아지는 사지 않고 분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인 핸드를 많이 찾아주세요.)

정말 작고 까맣고... 오죽 작았으면 아빠가 냄비에 넣고 카메라로 찍었던 기억도 있다.

이름도 아빠가 꼬망이가 어떻냐고 추천해 주셨고 처음 온 수컷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건강했던 꼬망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꼬망이가 4살 때 사진이다.

데려왔을 때부터 대소변도 가리고 앉아! 엎드려! 손! 도 금방 익히고,
엄마랑 내가 말하면 고개를 좌우로 갸웃갸웃하는 게 퍽이나 귀여웠다.
처음 못마땅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꼬망이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파자파 파티를 하러 온 친구 품에 안긴 꼬망이다.




나는 가정사의 문제로 너무나도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었다.
자살을 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매일밤을 침대에서 눈물로 보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꼬망이만이 나의 유일한 가족 같았다. 꼬망이를 끌어안고 울고 꼬망이에게 위로받았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고,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꼬망이와 함께 외할머니댁에서 지내게 되었었는데,
외할머니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약 10년 동안 눈치를 보면서 살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때도 그렇게 젊은 나이가 아닌데, 콧등에 털도 있고 목살도 그렇게 안 처져있다!
요크셔테리어는 참 매력적인 골든리트리버분양 견종이다. 새끼 때는 까맣다가 성견이 되면 금색~은색으로 털바꿈을 한다.




부모님은 내가 꼬망이를 너무 사랑하는 게 걱정이 된다고 하셨었지만,
내가 토토와 별이에게 못 다했던 만큼 꼬망이를 꼭 잘 키우고 싶었다.




꼬망이는 종종 엄마랑 같은 포즈로 잠자고는 했다.

이후 샤워시켰다.



간혹 말썽을 피우기도 했지만..

간식 장난감도 곧 잘 사용하는 꼬망이.



21살 무렵,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고 응급실에 실려가던 그 순간에도 나는 꼬망이만 생각했다.
예전에 오빠 때문에 꼬망이를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적이 있어서 오빠가 꼬망이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만큼.. 나는 꼬망이가 정말 내 자식 같았다.
(물론 자식 낳아본 적 없고 엄마는 어떻게 비교를 하냐고 하시지만...)




나는 꼬망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당시 암컷은 중성화로 말이 많았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을 때는 일단 자연의 섭리에 맡기자!
싶어서 일부러 안 했었다가... 그게 화가 될 줄은 몰랐다.

자궁에 물이 차 저만큼 배가 부풀어 올랐다.



2017년에 꼬망이한테 자궁축농증이 생긴 것이다.
이 당시에도 꼬망이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수술에 대한 위험이 있었으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100% 죽는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수술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행히도 휴학해 연재 준비를 하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꼬망이 옆에서 간호할 수 있었다.

꼬망이가 수술 도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병원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ㅋㅋㅋ
너무 심하게 울어서 주변 손님들이 전부 휴지를 건네주었고 간호사들도 돌아가며 내게 위로해 주었다.



다행히도 꼬망이는 수술이 잘 끝나 무사히 완치할 수 있었다.
24시 병원이 아니었기에 집에서 통원하며 병원에서 장시간 앉아있고는 했었는데,
그러다 골든리트리버분양 보니 정말 많은 강아지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게 되었었다.

암으로 그 자리에서 숨이 멎은 말티즈.
너무 노견이라 이제 걷지도 못하고 축 늘어진 골든 리트리버.

특히나 그 말티즈가 너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고통스럽게 비명 지르며 가던 순간을 봐버려서일까... 내 또래의 여성분의 절규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곧 잘 베란다 문을 열어두거나 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꼬망이가 먹으면 안 될 것을 먹어
자주 병원에 가야 하고는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귀도 들리지 않고 백내장이 4단계가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꼬망이가
엄마 가방 속에 있던 하리보 콜라 젤리 한 봉지를 먹고 구토를 했을 때
나는 24시 병원으로 달려갔고, 완벽하게 비워내기 위해 약을 2번 섭취했을 때
꼬망이에게 쇼크 발작이 왔다.




병원 안쪽에서 들려오는 강아지의 비명소리.
의사 선생님은 얘가 원래 뇌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병원 원장님을 원망했다.

꼬망이는 그 시점부터 완전히 병들어 버렸다.

그래. 잘 모르고 약 2번 섭취하는 게 완전히 젤리를 비워낼 수 있어서
한 번 더 구토시켜 주세요라고 말한 건 내 잘못이다. 하지만 그러면 노견에게 무리가 갈 수 있다거나
발작이 올 수 있다는 걸 왜 말 안 해주신 건지 모르겠다.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그 날밤은 너무 고통뿐이었다.

꼬망이는 치매에 걸린 듯 계속해서 유리문으로 돌진하였고 곧잘 침대에
올라오던 애가 침대에 올라와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화장실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던 애가 따라 들어와 비눗물을 마시려고 하였고



나 또한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니 골든리트리버분양 치매 증상들이 사라졌고,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건강검진을 하러 갔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해보니... 꼬망이는 지병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넣어야 하는 백내장 안약이 하나가 더 추가되었고,
매일 아침저녁에 심장담낭약을 먹어야 하는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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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허리디스크, 기관지 흡착.. 슬개골 문제 등등등...

사실 그간 산책을 매일같이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매일같이 산책을 해주다가



꼬망이가 갑자기 십자인대가 파열된다..

(사진에 왜 저렇게 머리카락이 많죠? 무시해 주세요..ㅎㅎ)
▲지인분이 선물로 주신 강아지 가방. 꼬망이가 다리를 못써 병원에 한달 넘게 통원하며 정말 많이 애용했다. 지금도 차에 탑승해서 이동할때 여기에 태운다.




3개월간 병원에 일주일마다 침 맞고, 약 먹고 하면서 치료받고 (산책은 금지!) 하다 보니 지금은 살짝 절룩거리기는 해도
곧 잘 걸을 수 있게 되어 재활 겸 10분 산책 후 유모차 10분 산책 후 유모차 루틴으로 산책하고 있다.




이때 정말~ 돈이 많이 빠져나갔었다.

당시 재정상 태도 좋지 않았던 터라 엄마에게 돈을 빌려서 병원비를 대고는 했다.
맨날 침 맞으면 가만히 못있어가지고 한 두개씩 빠지던 꼬망..




그렇게 꼬망이의 15살의 해가 지나갈 때쯤부터..
꼬망이의 이상행동들이 시작되었다.

소변을 못 가리기 시작하고, 새벽마다 울부짖고 산책 후나 먹을게 보이면 3~5시간 동안 짖기 시작하였다.

80세가 넘으신 할머니에게도 피해가 가고 얹혀사는 입장에 아픈 강아지까지..
더 이상은 안된다고 판단하여 나는 꼬망이를 데리고 아빠의 집에 왔다.
독립할 생각도 했었지만, 일단 당시 아직 계약을 하지 못해 돈이 없었고 청년 청약등 여러 번 당첨이 되었었지만
강아지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아빠집으로 가기 골든리트리버분양 전, 하남 스타필드에서 엄마와 개모차를 타고 나들이.



개모차 처음에는 나가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곧 잘 탑승하여 같이 카페거리도 나간다.

개모차는 이때 막 샀었는데, 개모차를 타고 꼬망이와 바다를 보러 가는 게 내 꿈이었어가지고....
하지만 노견에게 장시간 차탑승이 위험하다고 하길래... 그 꿈은 철회당했다.

그렇게 아빠집에서... 7살 된 초코푸들 콩돌이와 합사를 시작했다.
안전을 위하여 당연히 유리 안전문 펜스를 쳤고, 아주 가끔 둘을 만나게 해 주었다.

아마도 절대 친해지지 못할 것 같다.



꼬망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더 이상 이상한 거 잘못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할머니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쉬가 아니고 저만큼 빤거다.



16살을 기점으로 꼬망이는.. 더욱더 이상행동을 많이 했다.
하루 중 절반 이상을 계속 짖어대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말 5 시간 넘게 짖어대니 나도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화도 내고
윽박도 지르고 콧잔등이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

저도 지치는지 온몸이 불덩이가 될 때까지 짖고서야 지쳐 잠드는 걸 볼 때마다 화낸 게 미안하고
걱정되고는 했다. 물론 병원에서 진정제 성분이 들어간 약도 먹이고 있다.

그러다가 2025년 3월 16일 다시 약을 처방받으러 갔다가 원장님이 꼬망이 턱 쪽을 만지면서
여기 왜 이렇게 부풀었냐고 물어보셨고, 나도 저번에 꼬망이가 짖을 때 입안에서 피가 보였던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구강 종양일 수 있으니 상위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권유해 주셨다.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구강 종양은 전이도 빠르고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씀에..
집으로 돌아와 골든리트리버분양 2시간을 내리 비명 지르며 울었다.
엎드려서 꺽꺽대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심장을 부여잡고 울분을 토해내었다.
꼬망이가 평생 내 옆에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지인들이 악성이 아닐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도 침샘 염증일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뭐가 됐든 수술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어려서부터 칫솔질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아서 1년에 한 번 스케일링을 해주었는데
심장 질환이 생기면서 그마저도 해주지 못해 전부 내 탓인 것 같아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병원 측에서 상위 병원에서 CT촬영을 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주겠다고 하여 대기 중인 상태이다.

꼬망이를 위해서라면 예금을 깨고 전재산을 지불해서라도 치료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올해로 나는 만으로 27, 한국나이로는 29세이다.
나의 10대, 20대 시절을 함께한 꼬망이와 30대에도 함께하고 싶다.

이 글을 검색하여 들어오게 될 많은 분들께..
강아지는 새끼 때는 당연히 귀엽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치매가 오거나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들어가는 돈 단위가 세 자리 이상이 된다.
주변 어르신들은 16살이면 살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돈을 쓰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게 내 손으로 꼬망이를 죽이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다.
단순히 귀여워서 물건처럼, 나의 우울을 위해 강아지를 분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짖다 지쳐 코 골며 자는 꼬망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가족.
너의 마지막 순간을 언젠가 맞이하게 될 것이란 걸 알지만...
그게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는 않기를.
사라져 가는 네 기억들 속에서 이 언니를 꼭 기억해 주길 간절히 골든리트리버분양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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